블랙 스완 (The Black Swan)

대학시절.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배울때 개발기간 산정하는 방법중 가장 유용했던 배움.

“정보와 지식을 총동원해서 가능한한 정확하게 프로젝트 기간을 계산 후, 두배로 튀겨라.”

두배로 튀긴 기간에는 네가 모르는, 네가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인간사가 들어갈 공간이라는 것.
프로젝트는 현실세계에서 인간들이 수행하는것이니 말이다.


 

중간 과제는 프로젝트를 받아 계획을 세우는것이었는데,
제출할 때가 되어 확인해보니 내가 산정한 프로젝트 기간은 다른 학생들의 3,4배에 달했었다.
심지어 나는 “두배로 튀겨라”는 말을 듣지 않고 소심하게 1.5배도 튀기지 않은 상태였는데.
내가 산정한 기간을 본 다른 학생들이 어이없어 하며 하는 말.
“이렇게 간단한걸 한달 넘게 만들겠다고?”
웃기는건 그네들 모두가 성적이고 개발 능력이고 나보다 한참~~ 밑이었다는거.

그놈들은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개발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했기때문에 터무니없이 짧은 기간을 산정할수 밖에 없었던것.
물론 과제 점수는 내가 젤 높았지 ㅋㅋㅋㅋ ㅡ_ㅡ;;;

 
프로젝트 기간, 예산을 짤때 난 항상 궁금했고, 이의도 자주 제기했었다.
“지금까지 계속 그런식으로 계획을 짰고, 항상 예산초과, 기간초과였는데 또 똑같이 짭니까?
항상 발생하는 예상못한(?) 이벤트에 대한 완충기간도 넣어야되고 blah blah…”
답도 항상 같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일을 그런식으로 하면 안되지~”
“에이~ 이번부터 잘 지켜서 하면 되지~”

ㅡ_…. 바보냐….
1000번 에러 내놓고 에러의 원인을 제거하자고 하니 그런식으로 일을 하면 안된다고?
1000번 에러 내놓고 다음번엔 똑같이 해도 에러 안날거라고?
언제부턴가는 그냥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다들 저런식으로 기간과 예산을 짜고 있기 때문에 “알지못하는 변수”를 고려한 기간과 예산을 내놓을 경우
어차피 기간과 예산은 초과할것 이라고 받아들이며 보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길어도 너~~~무 길어보이겠지.
제대로 기간산정해서 마감일 지키면 설렁설렁 일했다고 욕먹을수도 있을테고.

 
맞는 말 계속 해봐야 나만 병신되는 세상에선 그냥 입닥치는게 현명한.

이 책에서 가장 새겨 들은 말은 이거다.
1001번째 죽은 칠면조에겐 그게 블랙 스완이었지만, 칠면조를 잡은 사람에겐 계획된 이벤트였을 뿐이라는 것.


프롤로그

내가 특별히 대문자로 표기한 ‘Black Swan’은 다음 세 가지 속성을 지니는 사건이다.
첫째, 검은 백조는 ‘극단값’이다. 극단값은 과거의 경험으로는 그 존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대 영역 바깥에 놓여 있는 관측값을 가리키는 통계학 용어다. 극단값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 존재할 가능성을 과거의 경험으로는 확신살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검은 백조는 극심한 충격을 안겨준다. 셋째, 검은 백조가 극단값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그 존재가 사실로 드러나면, 인간은 적절한 설명을 시도하여 이 검은 백조를 설명과 에견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요컨대 희귀성, 극도의 충격, (선견지명은 아니지만) 예전의 소급 적용, 이 세가지가 검은 백조의 속성이다.

낮은 예견 가능성과 큰 충격은 검은 백조 효과를 거대한 수수께끼로 비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은 아니다. 그보다 더 내 관심을 끄는 현상은 우리가 검은 백조란 없다고 가정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여러분이나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무작위성에 대해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맹목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검은 백조의 원리에서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많은 경우, 검은 백조 현상은 예상밖의 일이기 때문에 발생하며, 또 그래서 그 효과가 증폭되는 것임에 유의하자.

빈껍데기 전문가
극단값을 예견하지 못하는 것은 곧 역사의 진행 방향을 예견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의미한다.

사회생활에서 벌어지느 대부분의 일들은 희귀하지만 인과관계가 분명한 충격과 비약에 의해 일어난다. ‘정상적인것’, 특히 ‘정규분포’를 나타내는 종 모양의 곡선을 전제로 추론을 전개하는 대부분의 사회 연구는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가? 정규분포란 큰 편차를 무시하거나 다룰 수 없는데도 마치 우리가 불확실성을 길들이고 있다는 확신을 줄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이런 따위를 GIF, 즉 ‘거대한 지적 사기 (Great Intellectual Fraud)’라 부른다.

1부 움베르트 에코의 반서재

1장 한 경험론적 회의주의자의 도제 시절

우리는 자신이 지닌 지식을 개인 자산으로 취급하여 지키고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때 지식은 사회적 서열을 표시하는 장식물이다. 이런 지식관은 이미 알려진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서재에 대한 에코의 관점과 상반되며, 우리의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편견이기도 하다.

여기서 내가 ‘왜곡’이라고 지칭한 것은 사태의 추이와 관련 없는 것으로 드러난 요소들을 삭제함으로써 대중의 흥미를 끌려는 행위를 말한다. 편집은 흔히 왜곡의 과정이 될 수 있는데, 특히 ‘유능한 편집자’가 원고를 맡을때 더 심각해진다.

2장 예브게니아의 검은 백조

3장 투기꾼과 창녀

자가증식성
작가와 제빵사의 차이, 투기꾼과 의사의 차이, 사기꾼과 창녀의 차이를 알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조금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추가적인 노동 없이도 수입을 열 배, 백 배 늘릴 수 있는 직업과 하나를 더 얻을때마다 그만큼의 (유한한 자원인) 시간과 노력을 또 투입해야 하는 직업 – 다시 말해서 중력에 종속된 직업 – 의 차이다.

평범의 왕국이라는 이상향에서는 개별 사건 하나하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 어렵고 집단적으로만 의미를 지닌다. 나는 이 왕국을 지배하는 최고의 법칙을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 있다. 만약 표본이 크다면, 어떤 단일한 사례가 전체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극단의 왕국에서는 불평등이 극심해서 하나의 관측값이 불균형한비율로 전체에 충격을 가한다.

4장 천하루째 날에 살아 있기

우리가 검은 백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이유는 과거의 관찰을 미래를 결정짓는 것, 혹은 미래를 표상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연방준비은행은 납세자들의 돈으로 이들을 보호해주었다. 이른바 ‘보수적인’ 은행들은 이윤이 생길 때는 자신들이 이익을 챙긴다. 그러나 위기에 빠지면 그 비용을 우리 납세자가 낸다.

검은백조는 지식에 상대적이다.
칠면조의 입장에서, 천하루째 되는 날 먹이를 얻어먹지 못한 것이 검은 백조다. 그러나 도살자의 입장에서 그것은 검은 백조가 아니다. 그에게는 이 사건이 예견 불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은 백조를 도외시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수적인 문제점들
1. 보이는 것들 중에서 보고 싶은 부분에만 집중하며, 그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일반화시킨다. → 확인 편향의 오류
2. 인간은 명확한 패턴을 좆는 플라톤주의적 갈증에 부합되는 이야기로 스스로를 속인다. → 이야기 짓기의 오류
3. 검은 백조가 존재하지 않는 듯이 행동한다. → 인간은 검은 백조에 대해 프로그램 되지 않았다.
4. 우리가 보는 것이 거기에 있는 전부는 아니다. 역사는 검은 백조들을 우리 눈에서 가려 버리며, 그리하여 이러한 사건들의 확률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만든다. → 이것은 말 없는 증거에 대한 왜곡이다.
5. ‘땅굴파기’에 몰입한다. →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검은 백조들은 포기한 채) 잘 정의된 몇몇 불확실성의 원천들, 즉 지나치게 명확한 검은 백조 리스트에만 집중한다.

5장 확인 편향의 오류

우리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두뇌 장치(이것을 모듈이라고 한다)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논리적 규칙들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가능한 모든 상황에 똑같이 적용하는 만능 중앙처리장치가 우리 뇌에는 없다.

5장 확인 편향의 오류

진리 여부를 확인하는데는 반증 사례를 찾아보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점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6장 이야기 짓기의 오류

이야기 짓기의 오류는 연쇄적 사실들을 윽지 설명이나 논리적 연결고리, 즉 화살표에서 벗어나서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가리킨다. 설명은 사실들을 엮는 작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보다 기억하기가 용이해지며, 납득하기가 용이해진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해했다는 느낌이 증폭되는 그 순간, 이 습성은 과녁을 빗나간다.

우리는 영장류 가운데 인간 종의 성원으로 규칙에 대한 허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주어진 문제의 차원을 축소시켜 그것들을 우리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한것이다. 아니, 안타깝지만 우겨넣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정보가 무작위적일수록 차원이 더 커지며, 따라서 요약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거꾸로, 요약할수록 더 질서정연해지고 무작위성은 감소한다. 말하자면, 단순화를 강요하는 바로 그 조건이 세계를 실제보다 덜 무작위적인 것으로 여기게끔 만드는 것이다.
검은 백조는 단순화 작업에서 버려지는 부분이다.

대뇌피질이 ‘생각’을 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대뇌피질이 클수록 지능이 높아진다고 주장하는 글을 나는 계속해서 접해왔다. … 그런데 앵무새를 비롯한 일부 새들은 돌고래와 맞먹는 지능을 갖고 있는데, 새의 지능은 과선조 (hyperstriatum)라 불리는 뇌의 한 부분과 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7장 희망의 대기실에서 살다

연구소 사람끼리는 의례적인 인사란 없다. 어쨌든 오늘 하루가 괜찮을 리 없다. 우리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로 소중하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음도 발견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떤 것을 관찰하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안것 아닌가.

많은 사람들은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며 일생을 보내지만, 제대로 된 실적을 올리는 기간은 길지 않다.

“그래, 올해는 어땠어?” 이런 질문을 받을때마다 가볍지만 따끔한 고통이 가슴을 찌른다. 우리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일년을 허송한 것으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쾅! 엄청난 사건이 터져 큰 보상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아니면,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거듭되는 실패를 겪을 때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보답이란 참으로 힘겹기 짝이 없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지옥은 타인들이다.

원시의 환경에서 가치있는 것은 감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점은 우리의 지식에도 적용된다. 세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때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본능이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저절로 감각할 수 있는 것에 주의가 끌린다. 실제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봐 감각 가능한 것이 우리의 관심을 차지해 버리는 것이다. 하여간 이 안내 시스템이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 사이의 공진화 과정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이 잘못된 안내 시스템이 지리한 것, 감각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를 갖는 세계에 이식되어 버린 것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보상 체계는 열매를 쉽게 맺어주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신망을 잃고 형언하기 어려운 수치심에 휩싸이는 과정을 요구한다는데 있다.

사람들은 이런 자신감에 손톱만큼이라도 균열이 생길때 동물적 감각으로 눈치를 챈다. 그러므로 개인적 접촉을 할때에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각별히 자연스럽게 유지해야 한다. 정중하고 친근한 태도를 보여줄수록 자신감은 더욱 돋보이고,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조종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패배자로 행동하면 상대도 나를 패배자로 대우한다.
우리를 평가하는 척도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잘되고 못되고의 절대적 척도는 없다. 우리가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침착하고 위엄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8장 자코모 카사노바의 기막힌 행운: 말 없는 증거의 문제

성공담보다 훨씬 쓸모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도, 패배자의 이야기를 26.95달러를 주고 살 독자는 없다. 자서전이란 어떤 특성을 후속 사건들과 자의적인 인과관계로 엮어낸 책이기 마련이다.

9장 루딕 오류,혹은 네로의 불확실성

확률은 교양과목이다. 이것은 회의주의의 산물이지, 허리에 계산기를 차고 멋진 계산으로 정답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도구가 아니다.

과학을 산출하려면 의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너무 일찍 의심에서 벗어나는 것도 피해야 한다는 점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의 중요성을 알지도 못한채로 거기서 벗어나버리는 것이 사실이다. – 시몽 푸셰, 진리탐구비판 (Dissertation on the search for truth)

2부 우리는 결코 예견할 수 없다

10장 예견의 스캔들

인간은 임의적인 사건을 받아들이는 능력의 불균형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성공은 자기 덕분이며 실패는 통제범위 바깥에 있는 외부적 사건, 즉 무작위성 탓이라는 불균형이 그것이다. 좋은 일에는 공을 다투지만 나쁜 일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느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든 남보다 자기가 낫다고 착각한다.

빗나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예측은 세가지 오류를 낳는데, 이는 모두 불확실성의 본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첫번째, 중요한 것은 가변성이다. 첫번째 오류는 정확성은 도외시한 채 예측치를 내놓는 것 자체를 중요시하는데서 비롯된다. 계획 자체가 목적이라면 예측에서의 정확성이 예측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 어떤 정책을 결정할때에는 그 정책의 최종 예상 목표가에 추정 가능한 결과의 폭을 더 고려해야 한다. … 교육기관들은 피교육생들이 가정치를 설정할때 오류율을 설정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오류율이 너무 크기때문에 예측 그 자체보다 의미심장하다.
두번째 오류는 프로젝트가 연장되면 당초 예측이 설명력을 잏어간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데서 생겨난다. … 게다가 관료들의 예측 작업은 적절한 정책 결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불안을 달래기 위한 용도로 수행되는 경향이 크다.
세번째 오류, 이것은 아마도 가장 심각한 오류일텐데, 예측 대상이 되는 변수가 무작위적 특성을 갖는점을 이해하지 못하기때문에 일어난다.

이 세가지의 오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어진 예측치가 옳다고 생각되어도 우리는 이 예측치에서 상당히 빗나갈 실제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11장 새 ‘똥꼬’ 찾는 법

도구가 그 목적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식의 증대는 장난감과 기계 만들기를 즐기는 엔지니어의 취미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장난감을 만든다. 그 장난감 가운데 일부가 세상을 바꾼다.

과학적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인간은 세계를 구성하는 미묘한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고 스스로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사회 변화를 초래하는 가중치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자만한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현상을 ‘과학만능주의’라 일컬었다.
이것은 ‘조직’의 고질적인 병폐다. 내가 정부와 대기업을 두려워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이 두 조직은 구분하기도 어렵다. 정부는 예측치를 내놓고, 기업은 전망치를 발표한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와 계획경제를 내가 앞에서 가리킨 헛똑똑이 지식, 혹은 플라톤주의의 산물이라고 공격했다. 과학적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인간은 세계를 구서하는 미묘한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고 스스로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사회 변화를 초래하는 가중치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자만한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이런 현상을 ‘과학만능주의’라 일컬었다.

박테리아가 어떤 것이고 왜 질병을 낳는지를 우리가 알기 전까지만 해도, 의사들은 시술 전에 손을 씻는 것이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병원 내 사망의 상당 비율이 이 때문이라는 증거가 있는데도 말이다. 수술 전에 손을 씻을 것을 주장했던 19세기 중반의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의 노력이 인정받은 것도 그가 사망하고 나서 수십 년 뒤의 일이었다.

12장 인식의 왕국, 그것은 꿈인가

인간의 사고 능력이 효능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이와 동시에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다는 환상을 자신에게 심어주기 위해, 그리고 지난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소급하여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인식되었다. 이 점을 망각한 순간, 이번에는 이른바 ‘계몽’이라는 것이 우리의 머릿속 깊이 들어앉게 되었다.

무작위성이란 궁극적으로는 비지식이다. 세계는 불투명하다. 우리는 그 겉모습에 현혹당한다.

13장 화가 아펠레스, 또는 예견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 먼저 긍정적 우연과 부정적 우연의 차이를 구분하라.
2. 지엽적 정확성을 추구하지 말라. 더 간단히 말한다면, 시야를 넓혀라.
3. 기회를 놓치지 말라. 혹은 기회로 보이는 것을 놓치지 말라.
4. 정부가 내놓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라.
명심할 것은 정부에서 일하는 공복들의 목표란 그들 자신의 생존과 지위 보장에 있는 것이지 진실을 밝히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해서 정부가 쓸모없는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정부가 하는 일의 부작용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금융분야의 규제담당자들은 과도한 조치를 선호하면서도 무모하고 위험한 상황을 용인하는 경향이 잇다.
5. ‘그들이 여전히 모른다면, 그것을 지적해주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철학자 요기 베라가 불확실성에 대해 한 말이다. 그러므로 일기예보관, 애널리스트, 경제학자, 사회학자들과는 농담을 주고받을지언정 그들의 주장과 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우리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리해 볼 수 있다. 1) 인식론적 오만과 그에 따르는 미래에 대한 맹목, 2) 플라톤식의 범주 관념. 사람들은 쉽게 환원주의에 빠지는 우를 범하는데, 특히 진정한 전문가가 없는 분야에서 대학에서 받은 학위라도 있을라치면 더욱 쉽게 그러한 경향을 보인다. 3) 추론에 사용하는 허점 투성이의 도구들, 이러한 도구들은 검은 백조로부터 자유로운 평범의 왕국에서나 통할만한 것들이다.

3부 극단의 왕국의 회색 백조

14장 평범의 왕국에서 극단의 왕국으로, 그리고 되돌아오기

나는 자가증식성에 의한 집적효과와 정반대인 ‘긴 꼬리’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는 요청을 숱하게 받았다. 긴 꼬리라는 말에는 작은 것들이 한데 뭉쳐 문화 및 경제의 상당부분을 움직여낼 수 있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인터넷 덕분에 작고 특별한 주제와 틈새의 것들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긴 꼬리라는 말에는 불평등하다는 말도 함축되어 있다. 거대한 기바을 이루는 작은 것들과, 극소수의 초거인들이 함께 세계 문화의 일정부분을 대표하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이 작은것 중에서 일부가 이땨금 강자를 쓰러뜨리고 위로 올라가는 일이 생긴다. (이것은 ‘이중의 꼬리’다. 즉 작은것들의 큰 꼬리, 혹은 큰것들의 작은 꼬리다.)
긴 꼬리는 왕좌를 차지한 승리자들의 지위를 흔들고 새로운 승자를 불러들임으로써, 성공의 역학을 변화시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포착된 단면은 언제나 극단의 왕국에 해당한다. 즉 제2유형 무작위성의 집적에 좌우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극단의 왕국이기도 하다.

긴 꼬리 효과는 세계를 덜 불공평하게 만드는 극단의 왕국의 부산물이다. 세계는 작은 존재들에게는 덜 불평등해지지만, 큰 존재에게는 극심하게 불평등해진다. 그 누구도 기득권층이 될 수 없다. 작은 것들은 매우 전복적인 존재들이다.

부의 불평등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지적으로 우월한 극소수가 사회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다. 지적인 불평등은 소득 격차와 달리 어떤 사회적 정책으로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15장 정규분포곡선, 그 거대한 지적 사기

우리가 과거의 자료를 수집하여 거기에서 하나의 상관계수나 표준편차를 찾으려 한다면 그 속에 숨은 불안정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신체 평균 인간과 도덕 평균 인간, 즉 육체와 도덕에서 평균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케틀레는 평균값 좌우에 위치한 인간들을 편차 범위에 집어넣되, 통계 곡선의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에게 벌을 내렸다. 즉 이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한 것이다.

만일 이전의 승리가 미래의 더 많은 승리를 보장해준다면 우리는 원가우스적인 결과와 달리 40회 모두 앞면이 나오는 경우를 훨씬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정규분포곡선을 충분히 이해하되, 이것이 성립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분명히 구분하려 한다.

가우스 곡선의 편재성은 세계의 특성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 즉 인간의 머릿속에서 기인하는 문제다.

16장 무작위성의 미학

규모의 변화와 무관하게 (어느정도) 보존되는 대수적 혹은 통계적 측정값을 갖는 것이 프랙털의 속성이다. 가우스 수학과 다른 것은 비율이 동일하다는 점이다.

엄청난 자료를 다루는 일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자료 처리라는 일은 표상과 실재 사이를 오가면서 오류를 감지하는 직관을 길러 준다.

17장 로크의 미치광이, 혹은 엉뚱하게 사용되는 정규분포곡선

우리는 극단의 왕국에 속하는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것이 평범의 왕국에 속한 것인 양 다룬다. 즉 ‘근삿값’으로 처리하고 있다.

로크는 미치광이란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추론을 하겠다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나는 정밀함을 추구하다 오류를 빚기보다는 폭넓은 측면에서 대체로 옳은 쪽을 추구한다.

이론의 우아함은 종종 플라톤주의가 유도한 결과물이자 약점이 된다. 이론의 우아함은 우아함 자체를 추구하는 쪽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18장 짝퉁의 불확실성

4부 결론

19장 절반 더하기 절반, 혹은 검은 백조와 맞붙어 지지 않는 방법

사람들은 유독 검은 백조에 관한 것만 빼고 합리적이 되려는 경향이 있다.

놓친 기차가 아쉬운 것은 애써 쫓아가려 했기 때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들이 생각하는 방식의 성공을 이루지 못한다고 고통스로워하는 것은 남들의 생각을 추종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택할 수만 있다면 경쟁의 질서 바깥이 아니라 그 위에 서도록 하라.

자신이 설계한 게임에서는 쉽게 패배자가 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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