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동맹 (Black Mass)

기독교와 국가로서의 미국의 공통점.
나”만” 맞다. 이의제기하는 늬들은 영원히 지옥불에서 타라.
나”만”맞다는데 불만이 있는 늬들이 잘 몰라서 그런다.

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참 좋은거야~ 라며 실제로는 상대방이 즐기고 (혹은 결국은 즐기게 될거라는) 있다는 생각을 하며 범죄를 저지르는 강간범의 느낌.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는 전단지를 받기 거부하면 구원받게 해준다는데 왜 그러냐고 따지고 드는 아줌마들이 권력을 잡으면 저렇게 되는거라고 짐작만 해본다.

할말은 많지만 기독님들한테 잘못 걸려서 인생 피곤해지고 싶진 않으니 여기서 이만.


1장 유토피아의 최후

서양사회에 영향을 미친 천년왕국주의는 기독교의 유산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역사를 시작과 끝이 있는 이야기로 보지 않는다. 힌두교와 불교는 인간의 삶을 우주적 순환 속의 찰나로 여기며 구원을 긑나지 않는 순환에서 벗어나는것으로 이해한다.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 유럽에서는 플라톤과 그의 제자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인간의 삶을 파악햇고 고대 유대교에도 세계가 곧 끝난다는 사고는 없었다. 유독 기독교만이 인간의 역사가 특정한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는 신념을 고취했다.

노먼 콘은 천년왕국 운동과 천년왕국 분파를 다섯가지 특징을 지닌 구원론으로 규정한다. 우선 집단적이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구원이 이루어진다. 둘째, 이땅에 존재한다. 구원은 사후에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실현된다. 셋째, 즉각적이다. 구원은 순식간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넷째, 전면적이다. 구원은 지상에서의 삶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삶을 송두리째 바궈 완전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기적적이다. 구원은 신성한 힘에 의해 또는 그 힘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다.

‘서양’이라는 실체가 불분명한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든 세계의 악이 모두 ‘서양’에서 도래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인간은 지극히 폭력적인 동물이기에 비서양 사회에서도 대량 학살이 수없이 많이 일어난다. 그러나 서양은 역사를 바꾸고 인류를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무력과 폭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중세 후기 유럽에서 요동쳤고 20세기에 재등장한 천년왕국에 대한 열정은 순수한 서양 전통에서 빗나간 현상이 아니다. 그 열정은 항상 서양 역사와 함께 살아 숨쉬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20세기에 그 열정을 구현한 것은 폭력을 동원해 인류를 재창조하려 한 세속 체제였다.

2장 20세기의 계몽과 폭력

서양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계몽주의의 이상에 헌신하는 체제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러시아 제국의 전제주의가 모습을 바꿔 소비에트 국가로 나타났다는 주장을 접했다면 아마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소비에트 체제가 그 어떤 목표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뒤에야 비로소 소비에트에서 자행된 폭력은 러시아 제국의 유산이라는 설명이 등장했다.

유기적 공동체라는 사고는 다양성을 인정하면 갈등이 불거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언제나 사회의 소수집단을 적대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인종이 서로 불평등하다는 신념을 지닌 사람들 대부분은 사회 개혁을 통해 열등한 종족의 선천적 불이익을 보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에는 모든 인류가 장차 도래할 보편 문명에 참여할 수 있겠지만 그러려면 그들 고유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유럽의 생활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유주의적 인종차별주의’였다. 자유주의적 인종차별주의는 ‘유럽이 경험한 것 중 최상의 것을 모든 사람의 귀감으로 삼으며 창의 적인 유럽인으로 변모하고 있는 누구나 인류의 궁극적인 완전함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자유주의적 인종차별주의는 무력을 동원해 다른 문화를 파괴할 가능성을 열어 주었고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대량학살도 허용했다. 저항하는 문화는 다가오는 보편 문명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자 진보의 장애물로 간주되어 제거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이슬람교 운동은 폭력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수단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중세가 아닌 근대 서양의 전통에 속한다. ‘이슬람교 파시즘’이라는 용어는 이슬람교가 서양 사상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덮어 버린다.

급진 이슬람교는 근대 혁명 이데올로기면서 동시에 이슬람교에 뿌리를 둔 천년왕국 운동이다.

오늘날 ‘서양’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워 스스로를 규정한다. 지난 세기를 풍미한 전체주의는 서양의 일부가 아니었다는 말이지만 사실 전체주의 운동은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부활시켰다. ‘서양’을 규정하는 개념은 역사 속에서의 구원 추구고 서양문명을 다른 문명과 구분짓는 특징은 민주주의나 관용의 전통이 아니라 역사에는 내재된 목적이 있다는 역사적 목적론이다.

3장 주류로 부상한 유토피아

유토피아 사고는 인식되지 않을때 가장 위험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신자유주의 사고는 영국 및 여러 나라들의 정책을 형성해 왔다. 신자유주의는 여러 사상 조류에 속해있지만 모두 다음의 핵심 신념을 공유한다. 자유 시장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정부 영역은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바람직할 수 있지만 시장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제한되어야 한다. 자유시장은 가장 생산적인 경제체제이므로 세계 전역이 자유시장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 자유시장은 경제를 조직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평화로운 체제다. 자유시장이 확대될수록 인간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의 원인은 감소된다. 전 지구적 자유시장이 실현되면 전쟁과 독재국가는 사라지고 인류는 전례없는 단계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당대에 새롭게 등장하던 상업 사회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이를테면 애덤 스미스는 상업 사회를 인간 최고의 조직 형태라고 여기면서도 매우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이따금 스미스는 시장이나 그가 자주 쓴 표현인 ‘자연적 자유의 체제 (natural system of liberty)’를 유토피아라고 언급했지만 지금까지 인간이 성취한 체제 중 최고의 체제라는 의미지 심각한 결함이 없는 체제라는 의미는 아니다. 스미스는 자유시자가의 생산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시장의 도덕적 해이를 두려워했다. 역국 북부에 설립되고 있던 공장에서 단순 작업만 반복하는 노동자들은 굳이 많은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었으므로 그런 공장을 중심으로 조성된 특징 없는 도시들에서 미덕이 증진될 리 없었다. 장기적으로 볼 때 그것은 상업 문명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었다. … 20세기 이데올로그는 스미스를 시장의 전도사라고 묘사하지만 사실 스미스는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을 초기에 포착한 이론가였다.

국제 체계가 전 지구적 통치 체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전통적인 전쟁의 목적을 확장했다. 도덕적으로 옳다면 ‘국제 공동체’는 언제든 군사행동을 할 수 있었다. … 군사 행동의 목적은 위협의 무력화에 국한되지 않았다. 인류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것도 군사 행동의 목적이었고 이를 위해서라면 선제 공격도 불사할 수 있었다. 이로써 전쟁은 가장 끔찍한 악에 맞설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 진보의 도구가 되었다.

4장 종말론의 미국화

고립과 전 지구적 개입은 신념을 완전히 포기한 적 없는 미국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두 가지 방식이다.

‘서양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착점’이라는 가정은 종말 신학을 믿는다는 신앙 고백이다.

신보수주의는 미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하나의 입장이자 사고의 집합체다. 정치운동으로서 신보수주의의 기원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미국의 안보 정책을 둘러싸고 비지어진 갈등에서 찾을 수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신보수주의의 인맥은 냉전의 부산물로 형성되었다. 신보수주의자들의 오류 대부분은 당시에 습득한 사고방식을 그때와는 다른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하는데서 비롯된다.

미국이 역사상 최고의 체제이자 정당성을 가진 유일한 체제라는 사고는 신보수주의 사고를 떠받치는 대들보로 남아있다.

미국과 다른 나라들은 이슬람교 나라들에게 ‘근대화’의 필요성을 강의하면서 서양 국가들이 거쳐온 발전양식을 따르라고 한다. 그들은 서양의 발전 양식을 서양 외부의 나라들에 이식하려고 할때마다 대량 폭력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20세기 유럽이야말로 유례없는 국가 살육의 장이지 않았던가? 폭력은 근대 서양을 구성하는 요소였다.

5장 무장한 선교사

앞서간 국가들은 극한의 육체적 고통을 가했지만 미국 심문관들은 정신적 압박, 특히 성적 모멸감을 주는데 초점을 두었다. 이라크에서 활용된 고문 기법은 희생자들의 문화를 목표로 삼았다. 희생자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아랍인과 이슬람교도로서 고문당했다. 미국은 이러한 고문 기법을 활용한 탓에 이라크인들에게 타락한 국가라는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고 미국이 지원하는 체제는 이라크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못박았다.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자행된 고문은 일부 장교들이 임무를 망각하고 행동한 결과가 아니다. 고문은 미국 고위 지도층이 결정한 일이었다.

보편 체제에 대한 신보수주의자들의 열렬한 신념은 저마다의 고유한 역사에 대한 무관심에서 출발한다. 어떤 문화가 미국이 대표하는 전 지구적 문명으로 가는 단계에 들어서 있다면 그들은 곧 미국의 일부가 될 것이므로 그들에 대해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요지부동의 보편주의는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인류가 국가 건설에 진지하게 관여하지 못하도록 높은 장벽을 쌓는다.

테러리즘은 다양한 종류의 비관습적 전쟁을 포괄하는 개념이므로 원인도 다양하고 해결책도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테러리즘을 한데 묶어 전 지구를 위협하는 단일한 세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테러리즘에 대한 몰이해를 나타낸다.

서양은 테러리즘을 아랍 문화나 이슬람교 순교 문화와 연계시킨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문화가 아니라 종교며 ‘이슬람교 세계’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랍인이 아니다. … 자살테러는 특정 문화를 괴롭히는 병리가 아니며 특정 종교와도 관련이 없다.

전 지구적 안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국가의 통제권 밖으로 핵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막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안은 없다. 상호확증파괴 원칙은 반세기 이상 핵무기 사용을 미연에 방지하는 장치로 기능해왔다. 종말론적 예언자가 이끄는 핵무기 보유국이 등장할 경우 이러한 핵무기 억제책으로는 완벽한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겠지만 이 원칙이 존속되기를 원하는 국가가 있는 한 이 원칙이 지닌 핵 억제력은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세계 어느 곳에서든 조직을 구축할 수 있고 찾아내기 어려운 연계망을 구축한 적이 등장하면 핵무기 억제장치는 완전히 무너진다. 대량 살상을 일으키려는 행위자의 정체를 모른다면 그들을 절멸시키겠다고 위협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6장 종말론 이후

자유주의는 기독교의 직계자손이고 기독교 신념과 공격성을 공유한다. 자유주의 사회가 적을 대할 때 보여준 흉포함은 자기방어라는 차원으로 설명될 수 없다. 자유주의 사회는 경쟁하는 신념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문명화된 삶을 구현하기 때문에 방어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 사회가 선교사적 체제로 변모하면 자유주의 사회가 성취해 온 모든 것이 위험에 빠진다.

인간의 욕구는 다양하기에 조화를 이룰 수 없고 보편적 가치들은 다른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정부가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다면 그것은 인류가 특정 지역에 국한된 대서양 민주주의가 전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을 만큼 유용한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해결할 올바른 방법이 단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가 날 때부터 결함을 안고 태어났다는 주장은 현실주의의 핵심이자 현실주의가 지배적인 견해가 되지 못한 주요 이유다.

최상의 정치는 보편 기획을 실어 나르는 도구가 아니라 상황의 변화에 요령껏 대처하는 기술이다. 인간 진보를 이야기하는 거창한 이상은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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