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배신: Nickel and Dimed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든다.
일주일에 7일, 두가지 이상 일을 뼈빠지게 열심히 하는데 점점 더 가난해진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것,
그 메카니즘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다.

“지금 밤하늘에 보이는 별빛이 우주를 통해 우리 눈에 닿는데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저 빛은 2-3년전에 발생한 것이다.”
라고 알고 있는것처럼 그저. 정보로서 알고 있다.


내가 그들의 삶을 정말로 ‘이해한다’거나,
사회 부조리에 분노하고, 그들의 심정에 ‘동조,공감’하여
분연히 일어날수도 있겠다는 뜻는 전혀 아니다.

지금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수두룩 하다는것을 알면서도
더럽게 맛없는 이 밥 한공기에 감사하며 남기지 않고 억지로라도 다 먹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는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작가는 나보다 미묘한 정도로 나은 인간인듯 하다.
직접 체험하고, 느끼고, 공감하고.
그러나, 자신의 출신성분(?)과 배경때문에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선은 깨끗하게 인정한다.
바로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인간에게 위선이라는게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정도 위선의 껍질을 벗을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책 리뷰 써놓은 사람들 보면 ‘중산층으로서의 특권을 포기 하지 않았다’라고 비난하곤 하는데
그건 애초에 못하겠다고, 자신의 모든것을 포기하고 뛰어드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책 머리에 선을 분명히 그어놓고 시작하고 있건만.

정말로 웃픈 사실은,
이 아짐이 이런 체험을 하고, 책을 쓴 것이 미국의 경기 활황기였던 2000년 무렵이였다는것,
하고자 하는 의지와 건강만 있으면 최저임금 일자리를 구하는것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는것.
그리고 현재 미국/세계경제는 지옥에서 벅벅 기고 있고
그나마 최저 임금 일자리조차 이민자들과, 경제적 하류층으로 몰락한 중산층 출신들과 무한결쟁을 하여 쟁취해야 한다는것.
물가는 더 올랐고, 경쟁은 더 치열하고, 임금은 상대적으로 그다지 변화가 없다는점.


1장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든다

공정근로기준법(Fair Standards Act)에 따르면 고용주는 식당 종업원처럼 ‘팁을 받는 피고용인’에게 2.13달러만 지급하면 된다. 하지만 2.13달러에 팁을 합한 금액이 최저 임금 미만이거나 시간당 5.15미만일때는 고용주가 그 차액을 채워 주어야 한다. 내가 일했더 식당중에서 이런 사실을 지배인이 얘기해주거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라도 알려준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2장 모두가 우리를 무시한다

나는 머릿속으로 영생 이론에 미치는 알츠하이머병의 영향에 관해 숙고하고 있었다. 내세에 이르기 바로 전의 삶이 우드크레스트에서 내가 돌보고 있는 많은 입주자들처럼 휠체어 손잡이에 의지해 머리는 뒤로 45도 젖히고, 눈과 입은 크게 벌리고 침묵하는 것이라면 누가 내세를 갈망할까? ‘영원히 살게 되는’ 영혼이란 우리가 죽는 순간에 가지고 있던 영혼일까? 그렇다면 천국은 우드크레스트와 비슷해서 사고능력이 다 죽어버린 상태의 사람들을 수많은 간호조무사들과 식이요법 보조원들이 돌보는 곳이어야 한다. 아니면 영생하는 영혼은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우수했던 상태, 즉 인지능력과 도덕심이 가장 높았을 때의 영혼일까? 그렇다면 치매에 걸린 당뇨 환자들이 컵케이크를 먹느냐 마느냐는 전혀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순수하게 구원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3장 ‘동료’라는 이름의 노예ㅤ

4장 왜 악순환이 계속되는가ㅤ

일은 남을 위해 하는거지만 흡연은 오로지 나를 위해 하는 거니까. 흡연자들이 이런 반항적인 자기 양육 심리 때문에 흡연 행위에 그렇게 집착하고 있다는걸 금연 운동가들은 왜 모를가? 미국이 일터에서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몸속에 키우는 종양과 그것을 키우는데 바치는 몇 분 뿐인듯 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내가 제일 먼저 깨다라은 것은 세상에 아무리 보잘것없는 직업이라도 ‘아무 기술도 필요 없는’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을 어느 정도로 열심히 할 것인가도 애매한 사안 중의 하나였다. ‘같이 일하기 좋은 동료’가 되기 위해서는 일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해내야 했지만 정도가 지나쳐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됐다.

월마트의 한 동료도 내게 비록 앞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지만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되는것’은 피하고, 적어도 관리자들에게 내 능력의 한도를 노출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충고했다. ‘우리가 일을 더 많이 할 있다는 걸 눈치채면 그만큼 더 부려먹으려고 하거든요.’ 그들이 게을러서 이런 조언을 해준 것은 아니다. 다만 목숨 걸고 일해 봤자 돌아오는 보상이 아주 미미하거나 아예 없다는 사실을 터득했을 뿐이다. 오늘 기운을 얼마나 쓰고 내일을 휘해 얼마나 남겨둘지를 계산하면서 일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민주 국가에 속한 자유로운 노동자인 저임금 노동자들이 늘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전혀 자유롭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임금, 그리고 중간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대다수는 직장에 들어설 때 시민으로서 누리는 자유권을 모두 다 문 밖에 두고 와야 한다. 여기가 미국이라는 것을 잊고 미국이 옹호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근무 시간이 끝날 때까지 입을 꼭 닫고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경영자들은 자신을 위해 일할 노동자를 특정 범주의 사람들 중에서 뽑아야 하지만 그 범주의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실제적인 경험보다는 계급 또는 인종에 관한 편견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앞서 설명한 억압적 경영을 해야 한다고 믿고, 개인의 영역을 침해하는 약물 검사와 인성 검사를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하지만 이 모든 일에 드는 비용이 엄청나고, 이렇게 억압하는데 비용을 많이 쓰다 보니 임금을 낮게 유지해야 할 수밖에 없다.

가난을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빈곤을 일반적으로 어렵지만 어찌어찌해서 넘어갈 수 있는, 생존 자체는 위협받지 않는 상태로 이해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곁에 늘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빈곤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의 심각성은 더욱 짐작하기 어렵다.

아직 노숙자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범죄자가 되는 두 가지 지름길이 있다. 첫째는 빚을 지는 것이다.

빈곤때문에 범죄자가 되는 두번째이자 훨씬 더 확실한 방버버은 피부색을 잘못 타고 나는 것이다. 사실상 지역사회에서는 피부색이 검고 가난하다는 두 가지 수상한 조합만으로 사람을 의심하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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